한강, 소년이 온다.

2022. 9. 9. 14:51Think/책

 

한강 작가님의 "소년이 온다"는 5.18 민주화 운동을 6명의 인물 각각의 시선에서 풀어낸 작품이다.

계엄군 총에 맞은 친구 정대를 찾다 친구의 죽음을 목격하고 전남도청에서 희생자들의 시신을 뒷수습하는 것을 도와주는 중학생 동호와, 그와 함께 시신수습을 도와주는 여고생 은숙, 양장점 미싱사 선주, 대학생 진수 등 의 각 여섯명의 시선으로 사건 당시와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일상 등을 서술하고 있다.

 

광주 전후로 한 역사나 정치, 사회에 대한 담론보다는 개인의 고통과 내면에 몰두한다는 점이 좋은 작품이었다. 작가 한강님은 5.18 전에 상경하였지만 광주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던 만큼 애착이 큰 작품이며 집필 과정에서 많은 압박을 받았다고 한다. 한강 작가님은 [소년이 온다]라는 이 소설을 쓰는 것을 피해 갈 수 없었으며 이를 통과하지 않고는 어디로도 갈 수 없다고 느꼈다고 한다. 문학을 통해 세상에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고 타인의 고통을 알리는데 많은 책임감을 느꼈던 것 같다.

(박근혜 정부 도서지원사업의 담당기관에서 '사상적 편향'등을 검증한다는 이유로 지원대상에서 제외되고 책에 줄까지 쳐가며 실질적인 사전검열을 받았다고 한다. 결국 이 작품으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갔으며, 한강 작가가 맨부커상을 수상하여 문체부가 국가 경사로 작가에게 대통령 축전을 보내도록 건의했으나 박근혜 정부는 이를 거부하였다고 한다.)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색 전구가 하나씩 나가듯 세계가 어두워집니다. 나 역시 안전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

 

작품의 인물 중 한명인 동호는 친구의 죽음을 보고 도망쳤었다. 동호는 자신처럼 친구나 가족을 찾으러 온 사람들을 보며 이 비극이 자신의 죄가 아니지만 자신의 죄인 것처럼 느끼고 괴로워한다. 시체 냄새가 가득한 도청에서 동호는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고 자신까지도 용서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인물 이름이 잘 기억이 안나지만) 작품 인물 중 한명이 7번 뺨을 맞았지만 마지막 뺨을 지우게 될 날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장면도 너무 슬펐다..

어떤 기억과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

 

살아남은 시민들은 살아남았다는 치욕과 싸운다고 말한다. 이들은 해방이 되고 자유의 몸이 되어도 고통은 선명해진다고 말한다. 자신의 죄가 아니고 비극에 맞서 싸운 것 뿐인데 남겨진 상처와 죄책감, 수치심 때문에 자신조차 경멸하게 되었다는 사실과 지옥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 말도 안되게 슬프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너'라고 부름의 작법윤리

 

책에서는 인물들을 지칭할 때 '동호' 나 '은숙이' 처럼 이름을 호명하지 않고 '너'라는 화법을 쓰고 있는데 그 이유가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이 소설에 그려진 광주사태 주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세계의 '사건'들이라면, 광주 항쟁을 그러한 사건의 어감에서 포착해내고자 '사태'라는 말을 쓰고자 하며 이것을 동시대적인 것으로 읽기를 노골정으로 요청하고 있다. 

유령이 된 정대가 '너(동호, 독자)'를 호명하는 부분에서 1장의 서술자가 '너-동호, 독자'를 호명하고 연이어서 2장의 정대(유령)가 '너'를 호명하는 이러한 연쇄는, 일차적으로는 혼란을, 이차적으로는 각 장의 서술자들이 서로 겹쳐보이는 효과를 생성시킨다. '객관 서술자'가 동호를 '동호'나 '그'라고 부르지 않고 '너'라고 부르는 지점에서 객관 서술자의 '객관자 시점'은 희미해진다. 이 소설에서 끔찍함을 겪지 않을 수 있었던 단 한명의 화자가 있다면 1장의 객관서술자였을 것이다. 객관 서술자는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작중의 사태 안에서 고통을 겪을 육체가 작품 안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객관 서술자가 '그'라는 객관 호칭을 버리고 '너'라는 호칭을 할 때, 서술자는 온전히 '사태' 바깥에 안전하게 나와 있을 수 없게 되며 서술자 역시 '사태'속에서 유령처럼 떠다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떠다니던 서술자가 간간히 '너'라고 할 때, 독자는 호명 당한 것처럼 움찔해 진다. '너'가 '동호'를 칭하는 것인지 독자에게 아직은 명확하게 파악될 수 없는 소설의 첫 페이지에서 '너(나)'는 움찔하며 눈을 크게 떠 보게 되는 것이다.

출처와 전문보기

 

 

5.18,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가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같은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아픈 과거를 되돌아보고 슬픈 역사를 짚어내는 것은 현재 우리의 모습을 잘 투영하여 바르게 나아가는 길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소년이 온다라는 작품에서 잔인한 인간의 악행과 본질이 무엇인지를 인물들의 세세한 일상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5.18을 아물지 않는 상처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이 소설은, 민주화 운동으로 희생된 사람들과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조금이라도 기리는 계기를 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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